✅ “이 투쟁/도망/얼음 반응은 원시 인류에게 매우 유용했다. 짧은 시간 안에 초집중해 경쟁 부족과 싸우거나, 검치호랑이로부터 도망가거나, 털북숭이 매머드를 사냥할 수 있었다. 이 시스템은 원시 인류에게는 요긴했지만, 현대인에게는 득보다 실이 많다.
일단 뇌는 신체적 위협과 심리적 위협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게다가 사활이 걸린 문제가 아닌 비교적 사소한 문제에도 투쟁/도망/얼음 반응이 촉발된다. 교감신경계는 사회적 위협(관계의 어려움, 직장 갈등, 가족 내 스트레스 등), 미래에 대한 염려(생계 문제 등), 지나간 일 곱씹기(말실수 등)로도 지나치게 활성화될 수 있다.
머리로는 이 요인들이 사소하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막상 일이 터지면 본능은 현실과 상상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사이가 좋지 않은 직장 상사가 보낸 한 통의 문자메시지, 찻길을 건너는 노약자를 기다리는 동안 뒤에서 울리는 경적 소리, 트라우마가 된 과거의 사건을 연상시키는 어떤 일 등…. 이 모든 것이 교감신경계를 자극해 투쟁/도망/얼음 반응을 촉발시킨다. 시간이 흐르면서 불안은 위험의 원인과는 무관한 상황(예를 들면, 자동차 사고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떨어진 물컵에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이나 생각, 기억과 연계된다. 이렇게 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그다음은 회복탄력성이 등장할 공간이 생긴다. 위협을 감지하면 투쟁/도망/얼음 반응을 일으키고 전두엽이라는 뇌 영역도 활성화된다. 말 그대로 뇌 앞부분에 있는 전두엽은 복합적 사고, 성격 발현, 의사결정, 사회적 행동 조절 등 모든 행동의 감독관 역할을 한다. 또한 전두엽은 단기적 목표보다 장기적 목표에 입각해 행동하게 만든다.
생존 본능은 일차적으로 위험 상황에 반응한다. 그래서 위험 앞에서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곧장 행동에 돌입한다. 건물에 불이 나면 화재 원인을 고민하기보다 무조건 뛰쳐나간다. 먼저 투쟁/도망/얼음 반응이 활성화되고 시간이 얼마 지난 뒤에 전두엽이 개입하는 것이다. 전두엽은 한발 물러나서 상황이 안전한지 위험한지, 애당초 진짜 위협이 존재했는지 판단한다.
회복탄력성이 높을수록 생존 경보망에 무언가 걸렸을 때 신중하게 생각한다.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돌아보고 교감신경계가 과잉 반응을 일으켰는지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않으면 스트레스 앞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다시 불이 난 건물을 예로 들면, 화재 현장에서 뛰쳐나온 뒤 한달음에 찻길로 달려가서는 안 된다.”
-<하버드 회복탄력성 수업>, 게일 가젤 지음│손현선 옮김 –